일상

[책] 길은 학교다.

J-Two 2009. 7. 6. 20:28
    내 18살의 기억은 이렇다. 50명이 넘는 친구들과 함께 쓰던 갑갑한 교실. 많은 친구들이 교실에서 자아실현의 꿈을 꾸기보다는 생물학적 꿈을 꾸었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살아 움직일라치면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에 속에서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 빛을 발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는 그런 것들이었다.

  이제 10년이 지났지만 학교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많이 변했다. 보라도 그런 아이들 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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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1학년 보라는 어느날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녀의 결심은 부모님과 선생님, 친구들의 마음을 바꿀만큼  절실한 것이었다. 그러나 흔히들 떠올리는 현실로부터의 도피도 아니었고 집안이 여유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착실하게 학교를 다니며 열심히 공부하는 보라였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작은 교실을 벗어나 좀 더 넓은 세상에서 제대로 된 배움을 얻기를 갈망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보라는 스스로 여행 계획을 짜고 많은 이들을 만나면서 후원을 부탁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난다. 인도부터 네팔,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거쳐 티벳으로가는 수개월의 여행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선택을 내리고 실천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학교를 그만둔다는 것. 그러나 보라는 교실을 떠났을 뿐 학교를 그만둔 것이 아니었다. 보라가 발을 디딘 곳은 단순히 어느 외국의 낯선 땅이 아니라 '길'이라는 그녀만의 새로운 학교였기 때문이다. 


 희망을 보다.

  책을 읽으면서 내 열여덟살의 삭막했던 풍경들이 다시 떠올랐고 나는 좀 다르게 살아보겠노라고 다짐했던 날들도 떠올랐다. 그리고 새파란 하늘아래서 히말라야 산맥을 거니는 모습을 읽다가 좁다란 방구석에 있는 내 모습이 억울해서 울컥하기도 했다. (그러나 누굴 탓하랴.) 그러나 조한의 말씀처럼 이 책이 나에게 남긴 것도 작은 희망 같은 것이었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에 대한 희망이랄까.

  우리는 인간답게 살고 있을까? 인간(人間)이라는 글자의 뚯처럼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이 된다. 우리의 삶이란 다양한 사람들과 서로 다른 삶 속에서 어울리며 스스로를 발견하는 과정이 아닐까. 그리고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것. 그때 우리는 스스로 인간(人間)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 되기 이전에 성공하라고 가르친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교실에서 사회적으로 보장된 길로 가기위해 모두를 앞지르는 방법만 가르치고 있다. 함께하는 법은 자꾸 잊혀져간다. 이렇게 자라난 세대가 우리와 함께하기를 바라는가? 그들에게는 우리 역시 하나의 경쟁자 혹은 걸림돌일 수 밖에 없다. 계속되는 경쟁과 생존.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시대는 그렇게 더 숨가빠지고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라의 여행은 하나의 희망으로 다가온다. 길 위로 나아가 수많은 사람들과 삶을 마주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는 법을 배우는 것. 이것이야 말로 이 피말리는 시대를 진정시킬 진정한 배움이 아닐런지. 보라가 보고 느끼고 배운 것들이 무엇인지 읽어본다면 당신도 동의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