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책]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J-Two 2009. 8. 23. 11:32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솔직히 그렇게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느낌에 전형적인 기획상품인 것만 같았서였다. 그리고 내 예측은 그리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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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서문에는 마치 순진한 열혈 청년 게바라가 여행에서 겪은 여러 드라마 같은 사건들을 거치면서 영화의 주인공처럼 점점 영웅으로 거듭나는 이야기인 것처럼 써놨지만..사실 그런건 없다. 그냥 평범한 여행기일뿐이다. 오히려 너무나도 낯선 남미 대륙의 풍경들은 공감이 가지않아 감흥없는 그림처럼  때로 지루하기도 하다. 여행의 내용 중간중간 체 게바라의 심적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나오지만 대부분은 친구 알베르토와 함께 무엇을 했고 누굴 만났는지 같은 사소한 이야기다. 정말로 소설이 아니라 여행기다.

  체는 여행 전부터 어느정도 민중해방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던 듯하다. 아마도 그가 자란 아르헨티나와 페론의 영향도 적지 않으리라. 그리고 직접적으로 어느 시점이라고 나오지는 않지만 여행을 통해서 그가 가진 열망이 점점 확실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아마도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가난의 풍경과 원주민들 덕분이겠지. 아르헨티나의 중산층이었던 그에게 '가난'과 '진실'을 알려준 여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가난에 길들여져있던 사람이었다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도 어떤 이들에게는 매우 생생한 서민의 세상이 새롭겠지만 이미 가난의 진실을 어느정도 체험을 통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여기 나온 풍경들이 그리 인상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체 게바라가 구사하는 멋진 문장들이다. (번역이라 어딘가 약간 미심쩍긴 하지만..) 그의 풍부한 감성과 묘사가 돋보이는 문장들에서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평전들 보다도 더 그가 타인에게 풍기는 느낌이 어떤 것이었을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제목이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여서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를 질주할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의 애마 포데로사는 초반에 여러 차례 고장이 난 끝에 얼마안가 결국 폐기된다.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그들은 걷고 얻어타고를 반복하는 고된 방식으로 여행을 한다. 물론 이때부터 제대로 된 여행이라는 느낌이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이런 좌충우돌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뒤에 붙은 해설은 읽지 않았다. 이게 무슨 교과서도 아니고 이러이러한 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투의 글은 거부하고 싶었다. 영화는 어땠을까. 영화를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