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과학기술 시대의 기타장인, 존 써 (John Suhr)

2009. 2. 12. 01:22음악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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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인터뷰 번역의 주인공은 이 시대 최고의 기타 장인 중 한명인 John Suhr입니다. 저는 서민(?) 인지라 아직 써기타를 만져본적은 없지만 그 명성만은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죠. 인터뷰의 내용은 존 써가 '펜사-서' 시절과 펜더의 마스터 빌더 시절을 거쳐 지금의 자기 브랜드를 운영하기 되게 까지의 이야길 들려줍니다. 이분은 악기를 만듦에 있어서 막연한 감과 철지난 고집을 가지기 보다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악기를 만드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또 다분히 완벽주의자여서 자기가 전 생산공정을 다 관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분입니다. 그런 분이니 오늘날 Suhr기타가 존재 하는 것이겠죠. (역자)-

  John Suhr 는 여러 면에서 어디에 고정시켜 놓기 힘든 사람이다. 그와 이야기할 시간을 찾는 것도 매우 힘들지만, 그를 산업 카테고리 안에서 어느 위치에 두어야 하는지도 생각할 거리다. 그를 기타를 만드는 마스터 빌더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앰프 장인이라고 해야할지. 그렇지만 두가지가 같이 성립하기 힘든 것은 아니다. 왜냐면 그의 가장 최근의 성과인 Suhr Guitars 가 양쪽 영역 모두에서 성공적으로 자리잡으며 10주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2008년 1월 기사입니다)

  그와 Steve Smith 가 세운 회사에서 만들어지는 기타들도 전통적으로 보이는 디자인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John은 기타를 만들 때 가지게 되는 마음 가짐과 전통 혹은 혼(mojo)에 대해 불평을 제기했다. John에게 있어 좋은 56 스트랫이 가진 혼이라는건 정량화 할 수 있는 것이며 그러므로 반복되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현대적인 제작 방법과 약간의 과학기술을 통해서 그의 악기들은 일관성을 가지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 가치가 변함없을거라는 확신과 함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접근이 헤드에 Suhr 로고가 박혀있는 기타에 모든 연주자들이 바로 느낄 수 있는 위대한 톤을 부여한다.

  John의 남다른 비전을 잘 보여주는 더한 증거는 그가 Bob Bradshaw와 앰프를 만들기 위해서 그 유명한 Rudy Pensa의 Rudy's Music Stop에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던 브랜드인 Pensa-Suhr를 떠났다는 것이다. 다른 많은 이들이 보기엔 할 말이 없게 만드는 선택이다. John의 특이함의 전형은 일을 하는 방법에도 나타나는데 그는 직접 앰프에 대해 공부를 하기로 했다. 숙련된 앰프 장인을 고용한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그는 스피커에서 그가 원하는 사운드가 나올때까지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가장 대표적인 디자인들을 연구하는데 몰입했다.

  John의 기술에 대한 포용은 그의 자작 기질과 맞물려 그를 그만의 궤도에 올려놓았다. 인터뷰를 통해 그가 더한 만족도를 얻기 위해 얼마나 자주 디자인과 작업환경을 개선해야 된다고 느끼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생각들은 Badger 앰프의 디자인과 SSC noiseless single coil system의 적용에서도 나타난다. 그리고 또 그런 가치관들이 그의 악기와 앰프를 최고의 경지로 끌고 온 것이며 앞으로도 수십년간 그의 저력이 계속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이다.

John은 Suhr Guitars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35년전 New Jersey에서 처음 시작했을 때 당신의 원래 생각하던 디자인은 어떤 것이었었나요? Leo Fender의 팬이었었나요?

  음, 그때를 생각하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나네요. 그 시절의 많은 것들은 이제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치만 잊을 수 없는 이야기가 하나있죠. 난 밴드에서 연주를 하고 있었어요. Mountain, The Who 그리고 초기의 ZZ Top에 큰 영향을 받은 밴드였죠. 그 때 난 펜더 기타는 연주하기에 너무 어렵고 소리는 너무 얇다고 생각했었어요. 난 54년도 스트랫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기타는 Hendrix나 Trower의 톤이 필요할 때만 썼었죠. 난 레스폴이나 레스폴 주니어를 훨씬 더 애용했어요. 스트랫 기타는 음들이 너무 쉽게 choked out되고 튜닝도 너무 잘 나간다고 생각했었죠. 1973년 그 시절, 난 막 기타에 땜질을 시작했었어요. 다른 무엇보다 기타가 먼저였죠. 내가 좋아하는 악기를 찾을 수가 없다는 좌절감 때문에 나중에 기타를 만들게 된거죠. 뭐든지 다 단점이 보였었거든요.

  나한테  Bob Benedetto(Benedetto Guitars의 창립자) 가 내 스트랫을 위해 만들어준 넥이 하나 있어요. 펜더 같이 생기지는 않았는데 내 불만들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거였죠. 그 과정에서 우리 둘 다 트레몰로 시스템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되었어요. Bob은 또 고물 더미를 뒤져서 나한테 맛이 간 레스폴 주니어를 준 적이 있었죠. 난 그걸 괴물로 바꿨지요. 그것과 내내 씨름을 하면서. 그리고 결국에는 내가 가진 기타들을 모두 매우 헤비하게 개조를 했어요. 난 정말 Bob의 밑에서 일을 배우고 싶었지만 그는 내게 말했죠. '니가 정말 이 일을 하기를 원한다면, 너 스스로 배우거라.' 난 아직도 Bob과 이야길해요. 그리고 내가 악기를 만들게하는 영감을 주는 것에 대해 감사해 하죠. 결국 첫번째 기타가 무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레스폴 주니어 비스무리한거죠. 


루디의 음악가게는 어떻게 들어가게 되었나요? 거기까지 가는데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내가 New York 시로 왔을 때 밴드에서 연주하는 것만으로는 먹고살기가 힘들었죠. 그래서 직업을 구했어요. New Jersey의 클럽 씬에서 연주하는 동안 요리사로 일을 했어죠. 그때 레스토랑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 중에 하나가 내가 제작이나 수리를 잘한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리고 그는 내가 오믈렛 만들기에 슬슬 지겨워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어요. 그가 후에 Rudy의 Music Stop의 세일즈 담당으로 이직을 했는데 그때 거기서 수리공을 한 명 더 필요로 한다는 걸 알았죠. 그가 Rudy에게 내 이야길 해주었죠.

  그 시절의 Suhr Guitars는 수리점이랄게 없었어요. 그냥 나혼자 큰 방에 있을 뿐이었죠. 내 첫번째 샵은 보일러 실에 작은 벤치였어요. Rudy는 Schecter parts dealer 였는데 그게 수백개의 악기들과 엄천난 양의 수리를 하게 되게끔 하기에는 오래걸리지 않았어요. 결국 보일러실에서 시작해서 빌딩의 두 개 층을 다 쓰게 되었죠. 이때가 내가 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게 된 시기였고 펜더 기타를 좋아하지 않을 때였어요.


그 때 Lou Reed 와 Eric Clapton을 알게 되신건가요? 아님 Mark Knopfler?

  Mark와 Lou는 내가 여러가지를 해준 고객이었어요. Reb Beach, Steve Stevens, Victor Bailey, Peter Frampton, G.E. Smith 같은 당시 그 지역 스튜디오의 연주자들도 마찬가지였죠. Eric은 몇년 후에 펜더에서 그를 위해 앰프를 만들어 줄 때 만나게 되었죠. Eric이 가지고 있는 Pensa-Suhr 기타는 Knopfler가 선물한거에요. 난 그 사람들과 알고 지내게 되기를 바랬었는데 운이 좋게도 난 Knopfler 와 Reed 둘 다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어요.



1991년 Robert Bradshaw와 앰프를 제작하기 위해 당신의 기반을 두고 떠나야 했을때( 루디의 가게에서 나옴) 그렇게 크게 성공한 가게를 떠난 다는 것에 대해 두렴움은 없었나요? 손안에 들어왔던 새를 놓치는 것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맞아요. 그랬죠. 나도 약간 걱정이 됐어요. 그렇지만 내가 옮겨야 겠다고 결심하기 전부터 Bob은 이미 3+ 프리앰프를 100대쯤 사전판매를 한 상태였어요. 난 항상 Rudy가게의 근로자일 뿐이었어요. 그리고 솔직히 이야기 하면, 내 새로운 삶의 계획을 실현하기에는 보수가 모자르기도 했었어요.

  난 New York 시에 있던 친구의 스튜디오에서 같이 밴드를 하던 시절에 프리앰프와 회로들을 내가 직접 다 디자인 했었어요. 난 내가 산 앰프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내 머리 속에서는 들리는 소리를 찾고 있었죠. 그때 내 부인이 될 사람은 이민 문제로 Columbia에 2년동안 붙들려 있었어요. 그래서 혼자인 난 내 스스로에게 전념할 무언가를 만들어야 했죠. 난 젊었을 적 New Jersey의 Union에 있는 Time Electronics에서 일했었는데 그때 배운 것들을 살려서 내 머리 속에 들어있는 톤을 3채널 프리앰프로 구현해보려고 바쁘게 노력했죠.


1995년에 당신은 펜더 커스텀 샵의 Senior Master Builder로 일하게 됩니다. 그때는 그 상황에 만족하셨나요?

  난 펜더에서 보낸 시절들에 대해 후회는 없습니다. 난 거기서 그들이 하는 방식을 배웠죠. 그렇지만 그건 내가 기대한던게 아니었어요. 난 Senior Master Builder 로 고용되었던 거고 무언가 배우기 보다는 그곳에서 일을 해야 했죠. 난 공장에서 어떻게 생산이 이루어지는가를 배웠어요. 그렇지만 난 다른방식으로 가기를 택했죠.


무엇 때문에 펜더에서 떠날 결심을 하게 된건가요?

난 제품을 좀 더 내 손으로 내 방식대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난 고개를 들려고 했죠. 난 새로운 CNC(나무를 가공하는 기계) 기계들을 요구했지만 빨간 테이프(접근 금지, 불허를 비유함)에 숨이 막힐 것 같았어요. 난 결국 좌절했지요. 그리고 내 기술을 거기 앉아서 프렛을 다듬고 기타를 조립하는 데 쓰기보다는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에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난 연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좋아해요. 난 그 mojo(펜더의 장인정신?)을 좋아하지 않아요. 결국 그게 모든 것의 이유죠.


당신과 Steve는 97년에 JST를 설립했지요. 어떻게 Steve와 당신의 가게를 만들게 됐나요? 둘은 어떻게 알게 된거죠?

  Steve는 소프트웨어 쪽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CNC 기계의 프로그래머였죠. 그는 내가 펜더에서 실망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내게 물었죠. 왜 독립해서 가게를 차리지 않냐고요. 난 아직 전체적인 프로그램밍(기타를 만드는 과정의?)에 대해 다 배우지 못했다고 했지요. 물론 돈도 문제였지만요.그리고 나도 이제 책임져야할 가족(부인과 어린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약간 망설여지기도 했어요. Steve는 리켄베커와 프로그래밍을 해본적이 있었지만 그는 기타 제작자는 아니었죠. 그치만 운이 좋게도 내가 해야할 일이라곤 내 CAD 샵을 차리는 것 뿐이었요. Steve는 내가 준 것은 무엇이던지 그만의 방식으로 재단이 가능했죠. 우리는 투자자들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거의 대부분 가족들이었고 몇몇의 친구들, Peter Frampton도 있었죠. 10년이 지나고, 이제는 점점 더 커지고 더 잘 되고 있어요. 그렇게 하는데 6-8년 정도 걸렸지만 확실히 난 옳은 선택을 했던 거죠.   


Steve 의 CNC 경험과 당신의 제작 기술 덕에 당신이 원하던 생산과정에 대한 전체적인 관리가 가능해졌습니다. 그건 어땠나요?

  성공적인 기타 제작을 위해 꼭 필요한 노력과 희생, 시간의 양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필요한 것이지 내 마음 속에 불안함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은 아니에요. 난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직접 바디를 가공하고 넥에 프렛을 만들고 또 이른 아침에는 칠 작업을 했었죠. 난 얼마전까지도 고독한 paint boy 였어요. 다행히 지금은 대신할 사람을 찾았지만. 나와 부인은 모든 픽업들을 다 집에서 직접 감고는 했어요. 그건 대신할만한 직원을 찾기가 힘들더군요.


제작자의 관점에서 Plek machine (컴퓨터 제어로 자동 또는 수동으로 프랫 드레싱을 해주는 장치)의 사용으로 바뀐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꼭 프렛작업을 할 때 Plek을 사용해야 하지는 않지만 이걸 이용하면 일을 예측할 수 있고 또 같은 결과물이 나오게 되는 과정을 이론화 시킬 수 있죠. 작업에 들어가기전에 전체적인 스캔을 할 때 사용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이 장비를 안쓰는 것은 X-ray없는 의사 같다랄까요. 원래 각각의 목재들은 각자 다른 특징이 있지만  Plek 그것들을 균일한 상태로 만들어주죠.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여전히 예전과 같은 작업 관리 방식을 유지할 수 있나요?

  난 좀 더 관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해요. 난 여전히 소규모 제작자 이지만 직접 선발하고 최고의 실력을 가진 직원들과 함께 나의 길을 가고 있어요. 난 내가 한명의 직원이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작업 공정들을 내가 관리 할 수 있어요. 이것이 우리가 더 나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원천이고 또 새로운 기술의 이점을 취할 수 있도록 해주죠.

  예를 들면 난 바디와 넥을 접합하기전에 그것들이 어떤 주파수 반응대를 가지고 있는지 측정할 수 있어요. 그 정보를 가지고 이것이 하나의 악기가 되었을 때 어떤 주파수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있는 거죠. 난 우리가 듣는 것을 과학 기술을 이용해서 이해하고 분석하려고 노력해요. 불확실한 전설같은 이야기들은 믿지 않아요. 이렇게 새 제품을 만들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서는 R&D를 위한 공간이 필요하죠. 


요즘 목재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요?

  목재는 언제나 제일 중요한 이슈죠. 우리는 오래되고 천천히 자란 메이플을 넥으로 사용합니다. 우리는 밋밋한 나뭇결을 가진 메이플을 쓴적이 없습니다. 그건 처음 제작을 시작했을 때부터 똑같죠. 그렇지만 점점 더 바디용으로 쓸 목재를 찾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어요. 요새 앨더를 가지고 오면 절반은 돌려보냅니다. 보통 너무 무겁기 때문이죠. 우리는 모든 목재를 재건조시켜요. 습도가 우리가 원하는 품질이 될 때까지 말이죠.


2003년에 스탠다드 베이스 모델을 만들게 된 계기는 뭔가요? 전에도 커스텀으로 베이스를 만든적이 있었나요?

  베이스는 전에도 많이 만들었었죠. Pensa-Suhr시절에도 그랬고 펜더에서도 커스텀을 만들었었어요. Wayman Tisdale을 위한 것들. 2003년까지는 Suhr에선 만들지 않았지만 내년에는 우리의 기본 모델의 연장선에서 베이스도 만들려고 해요. 사실 이번 NAMM에 새로운 베이스를 출품할 겁니다.

 
SSC 픽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죠.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 조금만 이야기 해주시겠어요?

  SSC는 공식적인 특허를 받은 제품이죠. 제가 발명가는 아닙니다. Ilitch Electronics가 발명자죠. 그렇지만 난 llitch가 뭔가를 해낼거라고 믿은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에요. 우리는 같이 그것이 Suhr 기타에 어울리도록 아이디어를 짜냈죠. 난 나중에 그걸 트레몰로 브릿지가 장착된 기타의 백플레이트와 일체화시켜서 나중에 그것만 부품시장에서 따로 팔도록 해달라고 했죠.

  SSC는 싱글코일에서와 같은 험을 만들어 줍니다. 단순한 더미 코일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효과들 없이 말이지요. 마치 안테나 처럼 작동하는데 톤을 깎아먹는 DC저항이나 유도 계수 없이 작동하죠. 이런 액티브 회로가 또 없어요. 이건 내가 본 것중 가장 싱글 코일 소리를 유지하면서도 단점을 보완한 제품이에요. 이걸 처음 보았을 때,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았죠. '왜 내가 그생각을 못했지?' 싶었어요. 이건 정말 탁월해요. 내가 장착해준 프로 연주자들 중에 99프로가 반나절 동안 소리를 들어도 아무런 차이점을 찾지 못했어요. 아주 작은 차이점도. 싱글 코일의 그 모든 영광은 여전히 SSC에서 건재합니다. 다만 험만 없을뿐. (역자 주 : 잡음이 없다는 거겠죠? SSC를 안써봐서 감이 안 잡힙니다.)    


작년에 Badger앰프를 내놓으면서 한바퀴를 거쳐 다시 돌아온 것 처럼 보입니다. 앰프 시장에 복귀하니까 어떠세요?

  신나죠. 그치만 전 정말로 떠난적이 없었어요. 가장 좋은 점은 여전히 우리는 작은 회사라는 거에요. 그래서 결심하면 바로 실행할 수 있죠. 만약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테스트 장비나 도구들에 돈을 투자해야 한다면 난 바로 그렇게 할거에요. 이제 내겐 빨간 띠(접근금지)가 없어요. 내가 그 빨간 테이프죠.

  난 현재 우리가 만들고 있는 새로운 앰프때문에 굉장히 흥분되요. 이번에 우리는 우리 앰프를 완전히 새로운 경지로 올려 줄 수 있는 직원들이 새로 들어왔어요. 2008년에는 앰프를 만든다는 것에 다시금 흥분을 느끼게 하는 새로운 앰프들을 개발할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그런건 예전에 다 해봤던 거라고 이야길 해요. 근데 그럼 뭐가 남아있나요? 남겨진 것은 다름아니라 뮤지션들의 요구를 제작자들이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모든 상황 속에서 그걸 작업에 최대한 반영하려고 해야하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예전에 다 해봤던 거란 건 없어요. 


당신이 이 사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무엇때문에 즐거운 거죠?

  내 기쁨은 위대한 연주와 위대한 소리가 나오는 기타를 만든다는 것이지요. 뮤지션이 편안함을 찾을 수 있는 악기요. 가장 큰 칭찬은 이런거에요. Steve Stevens가 이렇게 말했죠. "난 기타를 가게에서 사서 바로 스튜디오로 가지고 갔지요. 아무것도 바꿀 필요성을 못느꼈어요." 내가 기타와 앰프 만들기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내가 악기를 가지고 씨름하다가 좌절할 수 밖에 없었던 연주자였기 때문이죠. 물론 난 내 자리를 찾았어요. 그렇지만 난 내가 음악을 연주하면서 만들던 그 시절 내가 가지고 있던 그 불편함들에 대해서 여전히 뮤지션들이 걱정해야 된다고 생각치 않아요. 난 그런 경험들이 전혀 후회되지 않아요. 다만 더 좋은 악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연주를 할만한 여유를 주지 않네요.

  오늘날, 난 더 좋은 악기와 앰프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먹고 마시고 숨쉬지요. 예술가만이 진정 예술적인 기타를 만들 수 있을거에요. 그렇지만 사실 악기가 작동한다는 것은 단순히 부품들의 합 이상의 것이 있는 겁니다.



출처 : 프리미어 기타 08년 1월
번역 : 전조
원문 : http://www.premierguitar.com/Magazine/Issue/2008/Jan/Ten_Years_After_celebrating_a_decade_of_Suhr_Guitars.asp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