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한창기업, 기타 헤드머신 만들기 '50년 한우물'

2009. 1. 15. 17:27음악 활동


한창기업의 강한수 회장(가운데)이 강장수 대표(오른쪽),강 회장의 딸인 강승이 부장과 함께 회사가 만든 헤드머신 샘플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어느 회사 기타를 쓰세요?"

기자가 기타를 연주하는 것이 취미라고 말을 꺼내자 한창기업의 강한수 회장(68)이 대뜸 물었다.  한 국내 업체의 제품을 쓴다고 대답하자 강 회장은 "그 제품에도 우리 회사 물건이 사용됐다"며 "대부분의 기타 연주자가 모르고 있지만 국내에서 생산되는 기타라면 십중팔구 우리 제품을 쓰고 있다"고 웃었다. 한창기업은 통기타,전기기타 및 바이올린의 현을 조절하는 장치인 헤드머신과 브리지 등을 전문으로 만드는 악기부품회사. 국내에서 최초로 헤드머신을 개발했고 현재 100여종을 생산하고 있다.

회사는 1959년 설립된 이후 반세기 동안 대를 이어가며 헤드머신 하나에만 공을 들여 왔다. 회사의 제품은 국내 기타업계의 빅3인 콜트악기,스윙악기,데임악기에 납품되고 있으며 세계 최고의 전기기타 명품 브랜드인 미국의 펜더,깁슨에까지 공급된다. 헤드머신으로만 연간 9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시장점유율 1위,해외에서는 20% 이상을 차지한다. 세계 최대의 기타 부품회사인 일본 고토의 아성을 넘보고 있는 명실공히 국내 기타 부품업계의 지존이라 할 만하다.

창업주인 고 강영석(1916년 생,2002년 작고) 회장은 8형제의 장남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일제시대에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방직공장에 취직해 기계를 다루었다. 강 회장은 1950년부터 국내에서 가장 큰 방직공장이었던 조선방직에서 공장장으로 일했다. 그러던 중 최초의 국산 기타를 만들었던 세고비아에 근무하던 지인이 1959년 어느 날 강 회장을 찾아와 헤드머신을 만들어 볼 것을 권했다. 헤드머신이 너무 잘 망가지는데 수입부품이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이유에서였다.

강한수 회장은 "통기타 붐이 시작되는 시점이어서 부품 수요가 많았다"며 "기존 헤드머신들은 수입품인데도 몇 번 연주하고 나면 조율이 틀어졌고 심하면 부서질 정도로 조잡했다"고 술회했다. 창업주는 헤드머신이 방적에 필요한 실을 묶는 장치와 비슷한 원리로 제작된다는 점을 간파,한창기업의 전신인 서울금속공업사를 세웠다. 공방 수준의 업체였지만 통기타 붐을 타고 물건은 잘 팔려나갔다.

차츰 유명세를 타던 회사가 본격적으로 성장한 시점은 1978년 4남 중 장남인 강한수 회장이 대표로 취임하면서부터다. 그는 "1959년부터 선반부터 용접까지 안해본 것 없이 아버지 일을 도왔다"며 "회사를 물려받기는 싫었지만 따로 배운 것도 없고 아버지가 연로하셔서 사업을 맡았다"고 회고했다.

취임 직후 강 회장은 생산효율을 높이려 공장 자동화 방안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1년간의 연구 끝에 1980년 처음으로 헤드머신의 외형을 찍어내는 기계를 만들어낸 것을 시작으로 10년간 48가지 공정에 필요한 모든 기계를 자동화하는 데 성공했다. 강 회장은 "1990년대 이후 인건비 때문에 많은 기타 관련 공장들이 중국으로 가거나 도산했는데 우리는 자동화 덕택에 아직까지 국내 생산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창기업이 세계적 헤드머신 업체인 독일의 쉘러나 일본의 고토에 이은 후발 주자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당시 국내 기타업계는 전 세계 기타의 30%를 생산하는 '세계의 기타공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중 펜더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업체이자 국내 기타업계의 선두였던 콜트가 1980년 회사의 제품을 점검하자고 한 것.강 회장은 "우리 제품이 고토 제품보다 줄을 10회나 더 감아도 멀쩡할 만큼 내구성이 높았다"며 "콜트가 생산한 펜더기타에 우리 제품이 쓰인 것이 알려지면서 국내외 바이어들이 줄을 서 사갈 정도였다"고 말했다.

탄탄하게 성장하던 회사는 1990년대 초 중국산 저가품이 국내 시장에 대거 등장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수출보다 내수에 집중한 것이 원인이었다. 강 회장의 상황타개책은 중국이 따라올 수 없는 고부가가치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강 회장은 3년여의 연구로 현을 고정시켜 음정이 변하지 않게 하는 고급 헤드머신인 로킹 튜너(Locking-tuner) 등의 제품을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해 국내 시장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및 유럽시장까지 공략하기 시작했다. 강 회장은 "2000년대 초부터 OEM 비중을 낮추면서 해외 기타 메이커에 직접 납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는 2006년 강 회장이 28년간 끌어오던 회사를 1988년부터 같이 일하던 막내 동생인 강장수 대표(54)에게 물려주며 현역에서 은퇴해 2.5대 경영체제로 돌입했다. 회사에는 3대째 대를 이어갈 강 회장의 3녀 강승이씨(38)가 총괄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세계적인 메이커들과 본격적으로 경쟁해야 하는 시점에서 젊은 사람들이 회사를 이끌어 주기를 바랐다는 것이 강 회장의 설명.강 회장은 "100년 가는 회사가 되는 것이 바람"이라고 말했다.

  강장수 대표의 비전

"품질로만 경쟁하면 세계적 명품 헤드머신인 쉘러나 고토에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브랜드를 더 많이 알리는 전략에 주력해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나가겠습니다. "

강장수 대표는 "판매에 있어 품질 못지않게 브랜드 이미지가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강 대표는 1980년 홍익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국제상사에 입사,기획과 자금 분야에서 일하다 1986년 지역난방공사로 옮겼다. 1988년 기획 경험을 살려 사업에 도움이 돼 달라는 형 강한수 회장의 요청으로 부사장으로 입사,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회사의 경영을 물려받았다.

강 대표는 취임 후 회사가 생산한 물건에 회사 브랜드를 부착하는 것과 품질이 뛰어난 제품을 개발해 해외 명품 기타업체에 직접 공급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그동안 회사의 제품은 주로 해외 유명 헤드머신 업체의 OEM 생산품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실정이었다.

이를 위해 강 대표는 끊임없이 기술개발에 주력해 지난해 셀프로킹튜너(Self-Locking tuner)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제품은 줄을 고정할 필요가 없이 줄을 끼워 돌리기만 하면 자동으로 줄이 물린다. 국내외에서 8건의 특허를 받았고 현재 일본의 유명 기타회사인 ESP와 미국의 깁슨 및 펜더의 고급기타 제조공정에 회사의 브랜드로 각각 1500세트씩 직접 공급되고 있다. 품질은 외제와 동등한데도 가격은 싸 인기가 높다는 것.국내 기타업체 스윙악기의 김태영 대표는 한창의 제품에 대해 "외제보다 60%까지 저렴하고 견고하며 정확하고 부드러운 동작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회사는 특히 최근 미국의 수제 명품 어쿠스틱 기타 업체인 테일러와 전기기타 제조에 관련된 기술 제휴를 맺었다. 이번 달에 미국에서 판매가 시작된 3600달러짜리 기타에는 한창기업의 로고가 박힌 헤드머신과 줄 고정장치인 브리지가 장착돼 있다. 강 대표는 "테일러 측에서 우리 회사 제품을 썼다고 광고도 했다"며 "앞으로 명품기타 메이커에 우리 브랜드 제품의 직접 수출이 늘 것"이라고 말했다.

강 대표는 강한수 회장과 함께 3대 강승이 부장에게 경영수업을 시키고 있다. 강 부장은 대학(유한공전 시각디자인89)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1994년 평사원으로 입사해 현재 회사의 제품 패키지 디자인과 제품의 설계 및 R&D(연구개발)를 담당하고 있다. 강한수 회장은 "딸 다섯 중에서 남자 못지않은 과단성을 가진 셋째가 맘에 들었다"며 "테일러에 나간 물건도 직접 디자인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회사는 내년 10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강 대표는 "세계적인 부품회사로 키우고 3대를 이어갈 훌륭한 징검다리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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