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 끝없이 진화하는 천재의 작품들

J-Two 2019. 4. 9. 20:48

트위터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호크니 전시를 알게 됐다. 예전에 타임라인에서 우연히 원근감 제로의 80년대 컴퓨터 그래픽 같은 이미지에 세련된 색감으로 이루어진 수영장 그림을 보며 감탄했었는데, 그게 바로 호크니 스러운(?) 그림이었다. 그 작가가 전시를 한다기에 망설임 없이 표를 예매했다.

처음엔 표를 사놓고 천천히 보러가려했는데 갈수록 사람이 더 많아질거라는 이야기에 그냥 얼른 다녀오기로 했다. 평일에도 사람이 많다고 해서 작정하고 개관 전에 가서 기다리다가 열자마자 들어갔다. 다행히 아침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백수생활의 좋은 점이다. 

원래 미술에 대해서 잘 모르거니와 날 것의 느낌을 그대로 느끼고 싶어서 호크니에 대해 별로 알아보지 않고 그냥 갔다. 그냥 힙한 그림들이 있겠거니 싶었다. 그렇게 나이 많은 분인줄도 몰랐다. (혹시나 해서 오디오 해설기를 빌려서 들어갔는데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주요 작품 설명은 이미 전시장에 다 되어 있었다.)

2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처음 마주하는 그림이 즐겨마시던 차(tea)의 포장 박스를 그려놓은 작품인데, 캔버스를 입체 도형처럼 조각으로 나누어 구성해 놓았다. 그림이 가지는 평면의 한계를 극복하려했던 시도라는데, 어릴적부터 심상치 않은 사람이었음을 직감했다.(Hockney tea box로 검색하면 나온다.)

나는 그의 초기 판화작업이 매우 좋았다. 펜으로 그린 가벼운 일러스트 같으면서도 좀 더 어둡고 아련한(?) 느낌이 드는 그림들이었는데 정말 매력적이었다. 60년대 작품이지만 지금도 매우 현재 같은 느낌을 받는 건 아마도 형식의 단순함(종이와 잉크의 번짐으로 만 구성된) 때문 아닐까 싶다. 특히 에칭과 애쿼틴트라는 판화 기법이 무척 매력있다는 걸 알게됐다.        

그의 대표 스타일로 알려진 원근감이 사라진 포스터 같은 그림은 80년대 LA 시절에 그린 그림인데, 뭐랄까 80년대 LA를 살아본 적 없지만 그림 한 점에 그 시절의 모든 느낌을 - 화창한 날씨와 걱정없는 미래, 다 가진 후에 오는 약간의 공허함을 - 다 담은 듯 했다. 매우 단순화 시킨 배경과 비교하여 막 튀어나오는 듯 섬세한 물의 표현은 계속 들여다 보게 만든다. 보는 재미가 있는 그림이다. 

테이트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품이라는 '클락과 퍼시 부부'는 볼 땐 아주 평범해 보였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빛의 느낌이 굉장히 자연스럽지만 어디하나 어둡거나 너무 튀는 곳 없는 - 당시로서는 불가능한 HDR 합성의 느낌이 나는 - 그림이다. 멋지긴 한데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렇게 대단한 줄은 잘 모르겠는 그림이랄까.

설명을 보니, 호크니는 사진이 발전하는 시대에 회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더랬다. 90년대에 와서는 단순히 눈으로 보는 세계를 벗어나 새로운 구도의 작품들을 그려낸다. 인물에서 피카소 뺨치게 구도를 비틀고 역원근법이라 부르는 재미있는 구도도 등장한다. 호텔 시리즈에 가서는 광각렌즈로 본 것 같은 왜곡된 구도에 화려한 색감이 더해진 풍경이 나오는데 그 색다른 느낌이 정말 보는 재미가 있다. 지금봐도 이렇게 멋진데 당시에 줬던 충격은 어땠을까.

정말 명불허전이었다. 나같은 미알못도 작품 보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판화! 판화가 이렇게 매력적이라니. (참.. 중간에 틀어주는 영상에서 호크니 젊을 적 모습이 나오는데 DJ DOC 정재용 좀 닮은 듯..?)

마지막에 기념품 코너에서 그림 엽서 몇장 샀다. 내 선택은 오른쪽 수영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