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임동혁의 슈베르트, 예술의 전당에서

J-Two 2018. 3. 8. 22:03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임동혁 피아노 연주회에 다녀왔다. 사실 그가 누구인지도 잘 모른체 짝꿍따라 간 공연이었는데 아직도 귓가에 피아노 소리가 맴돌만큼 좋은 공연이었다. 아무래도 임동혁 연주는 또 가게 될 거 같다. 

난 클래식에 관해서 거의 아는 게 없다. 슈베르트도 교과서에 나온 가곡의 왕 이라는 정도만 알고 예술의 전당 음악당도 이번에 처음 가봤다. 임동혁의 연주라고는 유튜브에서 본 드뷔시 달빛 연주가 전부였다. 짝궁이 이 곡을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임동혁이 연주한 버전을 제일 좋아한다. 나도 옆에서 몇번 같이 들었는데 다른 연주자들과 비교해 들어보았을 때 더 느낌이 드라마틱 하달까. 조성진의 연주도 들어봤는데 조성진이 잔잔하게 흐른다면 임동혁의 연주는 휘어감는다.



처음 가본 음악당에서 자리잡은 곳은 3층 왼쪽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아찔하게 높았다. 저 멀리 있는 피아노 소리가 얼마나 잘 들릴까 걱정을 했는데 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피아노 소리는 심장을 찌를 만큼 충분했다.

연주가 시작되고 처음 느낀 건 본래 피아노 소리의 아름다움이었다. 피아노 소리가 담긴 음원들이야 많이 들었지만 어떤 음원도 실제 소리보다 좋지는 못하다. 특히나 최고 피아니스트가 그에 어울리는 피아노로 전문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소리란, 이게 진짜 피아노 소리란걸 깨우쳐 줬다. 지금까지 들었던 모든 피아노 소리가 마치 불순물이 섞인 것처럼 느껴지면서 이제야 진짜를 만났다는 기쁨이 감동으로 밀려왔다.

슈베르트 곡은 모두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는데 흥미롭고 아름다웠다. 특히 즉흥곡이 좋았다. 가곡의 왕이라는 별칭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 몰라도 팝의 편곡을 떠올리게 하는 멜로디 라인들이 매력적이었고 큰 형식보다는 작은 아이디어 들이 돋보였달까. 임동혁의 연주 스타일과 특히 더 잘맞는 곡이지 않을까 싶었다. (인터뷰에도 슈베르트가 잘 맞는다고 했다.)


그의 연주를 유심히 들으면서 연주를 잘 한다는 게 뭘까 생각해봤다. 임동혁의 연주는 기본적으로 힘이 있는 연주다. 빠르게 몰아치는 연주에서도, 우아하게 흐르는 연주에서도 현 하나하나를 내려치는 느낌이 어찌나 선명한지. 그 선명함을 쉬지 않고 연주 내내 들려준다는게 대단하다. 특히 음 하나하나를 살려서 흩뿌리는 짧고 굵은 연음 연주는 듣고 있으면 정말 마법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힘과 선명함이 빛을 발하는 연주의 다른 편에는 지긋이 눌러 절제하는 연주가 있다. 그는 모든 음을 선명하게 치지 않는다. 오른손이 높은 건반에서 맑은 멜로디를 피어나게 할 때면 왼손으로는 낮은 건반을 어루만지며 중저음을 부드럽게 깔아준다. 오른손으로 아르페지오가 가녀리게 흐르면 왼손으로 중저음을 묵직하게 내려치며 곡의 느낌을 채워나간다. 임동혁은 곡에서 가장 전달하고 싶은 음들은 확실하게 밀어주고 받쳐주는 음들은 과감히 절제하여 가장 듣기 좋은 밸런스를 만드는 능력이 탁월했다. 요즘 대중음악에선 이런 조절을 믹싱이라 부른다. 결국 좋은 음악의 본질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날 연주가 임동혁 본인도 마음에 들었는지 앵콜을 일곱 곡이나 하는 엄청난 성의와 에너지를 보여줬다. 그가 다시 자리에 앉을 때마다 나도 사람들도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살면서 이런 공연을 또 볼 수 있을까. 다음 만남이 기다려진다.